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커트 코베인 (문단 편집) === 우울증과 마약 중독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kurtlove.jpg|width=100%]]}}} || ||<#000> '''{{{#fcb81e 커트 코베인과 코트니 러브}}}''' || [[Smells Like Teen Spirit]]의 대박 히트 후 대중들과 평론가들은 [[Nevermind]] 앨범에 대해서 완전히 새로운 장르를 창시한 앨범이라는 식으로 호평들을 하기 시작했지만, 커트 코베인은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관과 상충되는 상업적인 사운드로 프로듀스되었기 때문에 앨범이 성공한 것이다.''라며 Nevermind 앨범의 인기에 회의감을 느꼈고 자신이 시대의 대변자로 떠받들여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 및 밴드가 만이 히트한 원 히트 원더 밴드로만 기억될 것 같다는 생각에 우울해 하며 점점 음악에 흥미를 잃어갔다.[* 다만, 커트의 생각과는 달리 Nevermind 수록곡들 대다수는 90년대에 매우 유행했다.] 무엇보다 앨범의 성공 후 언론에서는 커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곡들의 가사와 속뜻을 트집잡는가 하면, 커트가 [[동성애]] 인권 옹호주의자라는 것과 그의 중학교 시절 친한 친구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엮어서 커트를 동성애자로 몰아가기도 했다.[* 다만, 실제로 [[코트니 러브]]를 만나기 전에는 성적 지향에 혼란을 느낀 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양성애자로 살아왔다고.[[https://m.search.naver.com/p/crd/rd?m=1&px=71&py=522&sx=71&sy=288&p=UOOWiwprvjsssOIrYLVssssstg4-372201&q=%EC%BB%A4%ED%8A%B8+%EC%BD%94%EB%B2%A0%EC%9D%B8+%EC%96%91%EC%84%B1%EC%95%A0%EC%9E%90&ie=utf8&rev=1&ssc=tab.m.all&f=m&w=m&s=xGUF8Iudf72lkv59cauws8V9&time=1574399344842&a=fsn_gen*e.link&r=3&i=90000003_0000000000000007011B84E7&u=https%3A%2F%2Fblog.naver.com%2Fmetalsucks%2F30083351783&cr=1|#]]] 심지어 커트가 파티에서 웃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찍은 파파라치의 사진을 싣고는 "무명 시절에는 "엘비스 프레슬리는 예술적인 재능이 없는 장사꾼이다"라면서 [[엘비스 프레슬리]]를 까던 사람이 성공하니 엘비스처럼 행동한다."며 그를 이중적인 사람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커트는 자신과 밴드가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고 결국 마약, 특히 [[헤로인]]에 의존하기 시작한다. [[코트니 러브]]가 위장병으로 괴로워하는 커트에게 진통제로 [[헤로인]]을 사용해보라고 권유했다고도 한다. 한편으로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이혼과 불화, 양부의 가정폭력으로 인해 심한 애정결핍을 가지고 있었던 커트 코베인은 온전한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싶어했고 때마침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코트니 러브]]와 [[1992년]] [[2월 24일]] 결혼하였다.[* 크리스 노브셀릭은 훗날 밝히기를 커트와 코트니의 관계는 연인 사이보다는 섹스 파트너에 가까웠다고 한다. 너바나의 멤버들은 어느 날 LA의 한 카지노에 놀러갔는데 커트와 코트니가 마주치자 너바나의 다른 멤버들이 있는 것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둘이 격정적으로 스킨쉽을 하기 시작했다고... 커트 코베인은 영국의 방송에 출연하면서 "나는 이곳에 계신 분들께 락 그룹 [[홀(밴드)|홀]] 멤버인 코트니 러브가 세상에서 가장 섹스를 잘한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요"라는 멘트를 하기도 했다.[[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postrockgallery&no=662370&s_type=search_subject_memo&s_keyword=.EC.BD.94.EB.B2.A0.EC.9D.B8.20&page=1|#]]] 그러나 커트와 코트니의 결혼 후, 두 사람에 대한 언론의 공격이 더 심해지게 된다. 언론은 커트가 [[낙태]]를 찬성한다는 발언을 하자 부부가 심각한 마약 중독자라 기형아가 태어날 확률이 굉장히 높은데도 낙태를 하지 않고 [[프란시스 코베인]]을 낳았다는 이유 등으로 까댔다.[* 당사자들도 출산 및 육아에 마약이 해가 된다는건 인지하고 있던 터라 오히려 둘은 재활원으로 폐관 수련하러 자진 입소하는 등 마약을 끊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곤 했다. 이런 언론들의 조소와는 다르게 프란시스는 [[1992년]] [[8월 18일]]에 아무런 병이나 장애도 없이 건강하게만 태어났다.] 결국, 최고의 인기를 얻으며 Nevermind 투어를 진행하던 도중, 커트는 심한 복통으로 쓰러져 입원하였고, 몇 달 동안 치료를 받으며 잠적한다. 그리고 [[1992년]] [[8월 18일]]에 딸 [[프란시스 코베인]]이 태어나고 커트는 [[1992년]] [[8월 30일]], [[Live at Reading|레딩 페스티벌]]에서 컴백한다. 당시 언론에서는 '''커트 코베인이 마약으로 인해 건강이 매우 안 좋아 죽어가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었다. 커트 코베인은 록씬에서 유명한 [[헤로인]] 중독자 가운데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마약중독자라는 사실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굉장히 꺼렸고 그를 마약 중독자라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몹시 싫어하였다. 때문에 인터뷰에서 매번 자신이 마약 중독자가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었다.[* 조지프 히스의 '혁명을 팝니다'는 이러한 커트 코베인의 자기모순에 대해 잘 다루고 있다.] 그래서 커트는 언론들을 조롱하기 위해 괴상한 가발을 쓰고 병원 가운을 입고 휠체어를 탄 채 무대 위에 나타나서 부들부들 떨면서 노래를 부르다가 뒤로 쓰러지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그리고 공연 중에 루머로 인해 고생하는 코트니 러브를 위해 관객들에게 "Coutney, We love you'''라고 외쳐주기를 부탁한다.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Live at Reading)]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kurt1993.jpg|width=100%]]}}} || ||<#000> '''{{{#fcb81e In Utero 활동기의 커트 코베인}}}''' || 커트는 자신을 향한 주목과 비난에 너무 지쳐있었고 다음 앨범은 아무도 듣고 싶어하지 않을 법한 음악을 만들겠다 생각했지만,[* 이때 작곡한 곡이 Frances Farmer Will Have Her Revenge on Seattle 등, 분노가 가득찬 곡들이다.] 딸 프란시스 코베인을 키우면서 안정을 찾았고, 인터뷰에서 그는 "뮤지션으로서 음악을 즐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새 앨범 작업에 임했다."고 한다. 그렇게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로 너바나는 [[1993년]] [[2월]], 3집 [[In Utero]]를 녹음하였고 같은 해 [[9월 13일]], 앨범이 발매되었다. In Utero는 팝적인 느낌이 표현되어 대중적으로 초대박을 쳤던 Nevermind와 달리 정리되지 않은 거친 드럼소리, 기타 연주 등이 그대로 담겨있는 너바나 특유의 우울한 정서가 강조된, 그런지 감성이 극대화된 앨범이었다. 앨범 녹음 당시 커트 코베인은 프로듀서 [[스티브 알비니]]에게 최대한 무겁고 더러운 사운드를 수차례 주문했다고 한다. 그러나 DGC 음반사는 이 사운드를 별로 맘에 들어하지 않아 R.E.M.의 프로듀서였던 스콧 릿을 데려와 앨범을 다듬었다. 그래서 커트 코베인은 이 앨범의 최종본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In Utero)]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